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8) - 이르쿠츠크 가는 기차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8.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여행 -기차에서 보는 풍경
7월 21일 밤 11시 45분경에 기차를 타고 하바롭스크를 출발하여 하염없이 긴 기차여행에 올랐다. 장장 약 60여 시간을 기차는 달려야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긴 여정이다. 서울과 부산이라고 해도 500km도 되지 않고 KTX를 타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기차여행이다. 그런데 3박 4일을 기차를 타고 간다고 생각하니 처음부터 기대가 걱정보다도 크다.
다음날 기차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현지시간으로 07:00 정도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로 가는 기차와는 달리 좀 더 구식인 기차지만 하루 잠을 자고 지내보니 6인실도 훌륭한 침실이 되고 여행에 아무런 불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기에 보면 4인실을 권하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행은 6인실이 더 현실감이 있는 것 같다.(물론 모스크바까지 쉬지 않고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기착하여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또 러시아 사람들은 대개 매우 순박하다. 외국 여행객에게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다.
기차의 외양과 내부 모습
어제 하바롭스크를 떠날 때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음을 생각하고 창밖을 보니 해가 높이 떠서 밖을 비추고 있다. 시베리아의 평원에 해가 비친다. 햇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광활한 모습은 장관이다. 시베리아의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에는 생각보다 습지가 많이 있다. 아마 여름이 되면서 땅속의 물이 지상으로 올라온 것 같다. 저 멀리 펼쳐지는 숲은 하얀 자태를 자랑하는 자작나무의 바다이다. 나무 기둥이 하얗게 변하고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나무는 사람들이 가꾸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 듯 비와 바람에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도 많이 보인다.
기차는 중간 중간에 제법 큰 역에서 30분 이상을 멈추고 있다. 승객들이 사용하는 물을 공급받고 화장실의 오물과 여러 쓰레기 등을 치우기 위해서 멈추는데 이때를 틈타 승객들은 내려서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바깥 공기를 쐬기도 한다. 좀 더 오래 멈추는 역에는 우리나라의 역과 같이 매점이 있어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기차는 아무르 강 주변을 달리고 있다. 중간 역에서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낯선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뜻밖에 한국말이다. 간단히 이야기를 하니 자기는 고려인 3세로 아들집(노보시리비스크)에 간다고 한다. 한 60여세 되어 보인다. 그런데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물론 어려운 단어나 최신 용어는 알아듣지를 못하지만 일반적인 의사소통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만리타국에서 동포를 만나서 기쁜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오랜만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즐거웠다. 열차안의 세면실을 사용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어쩔 줄을 몰랐는데 이 아주머니 덕분에 수도 사용법을 익혔다. 기차가 너무 구식이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으나 여행의 재미는 있다.
해뜨기 전 시베리아의 평원
시베라이의 평원 위로 떠 오르는 태양
멀리 보이는 자작나무숲 : 바람에 그대로 쓰러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아침 식사 : 빵과 햄, 요구르트 과일 등으로 자기 좌석에서 먹는다
중간에 기착한 역 : 이름은 모르겠다.
시베리아를 흐르는 강과 습지들
맑게 빛나는 하늘
점심을 러시아에서 산 러시아 도시락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그 고려인 아주머니가 한국라면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라면은 한국라면이 맛있다고 하며 가져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우리는 전혀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없다고 하니 조금은 섭섭해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사람은 반드시 한국 컵라면을 서너 개 정도는 가져가도 좋을 듯하다. 우리 앞좌석에는 러시아 여인이 있었는데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고려인 아주머니의 통역으로 이 여인은 울란우데까지 간다는 것을 알았다.
러시아 도시락라면 : 우리 라면보다 좁 짜다
기차는 하루 종일을 달려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을 달리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 고는 넓은 평원과 숲뿐이며 중간에 하천인지 강인지 모를 정도로 큰 흐르는 물이 나오고 또 평원이 펼쳐지고 자작나무의 숲이 계속된다. 자칫하면 권태로움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에 권태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조금 지겨우면 책을 보다가 다시 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는 행동의 반복이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가로이 세상일에서 벗어난 때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기차안의 기온이 약간 내려가 모포를 꺼내어 덥고 있으니 아들놈이 맥주를 한잔하자고 한다. 하바롭스크에서 떠날 때 가지고 온 맥주를 마시면서 아들놈과 집에서는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아들은 자신이 가진 사회관, 역사관 인생관 현실을 보는 시각과 가족과의 관계 설정 및 가족들 상호간에 가지고 있어야 예의나 믿음 등을 말하고, 나 역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했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이런 면에서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집에서도 다른 집 아버지와는 달리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일 수도 있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하니 아들놈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들놈이 이번 여행에서 원한 것이 아버지와의 대화라고 한다. 아들과 아버지의 간격을 더 좁혀 보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이다.
맥주를 마시며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24:00이 되었다.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한다. 어느새 열차에서 자는 두 번째 밤이다.
넓게 펼쳐지는 시베리아 평원 : 차창으로 찍은 사진이라 좀 흐릿하다.
중간기착역에서 : 잠시 휴식을 취하는 승객들, 그리고 승무원
객차내에 비치되어 있는 열차시간표 : 영어로도 되어 있다.
중간 기차역의 모습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다시 열차 안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여 아침 6:00경만 되면 잠이 갠다. 잠이 깨어 주위를 살펴보니 모두들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살며시 일어나 세면실에서 세면을 하고 창밖을 쳐다보니 시베리아 평원이 안개로 덮여 있다. 아마 일교차가 있어 아침 해가 뜨기 전에는 넓은 벌판에 안개가 끼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며 해가 솟아오르니 차츰 안개가 걷히고 벌판의 모습이 또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시베리아 벌판에 간혹 나지막하나 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바롭스크에서 기차를 탄지 어느 듯 30시간이 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열차여행이 지겨운 줄을 모르겠다. 기차를 타고 가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을 보니 끊임없이 잠을 자고, 때가 되면 먹고 한다. 모두가 장거리 기차여행에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지겨울 듯도 한데 아들과 나는 모두 잘 적응하고 있다. 창밖을 쳐다보면 같은 풍경인 것 같으나 다른 풍경이 우리 눈앞에 지나가고 그 경치를 즐기다가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식사를 할 때가 되어 먹고 잠시 피곤하면 잠을 자고 하니 시간은 어느새 흘러간다.
안개 자욱한 시베리아의 아침
열차에서 보는 시베리아 : 산과 들 숲,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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