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아들과 함께하는 러시아여행(2) - 블라디보스토크의 첫날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극동의 유럽 -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중앙역

 

 7월 16일 인천을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우리 세대에게는 구 소련이 더 친숙한 나라이다.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으로 조선과 러시아가 수교를 하였으나 1904년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파기되었고 그 뒤에는 전쟁과 동서냉전으로 소련과는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80년대 이후 동서데탕트의 효과로 우리도 구 소련과 1990년 정식으로 수교가 이루어졌다. 그 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바뀌면서 우리와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러시아가 무비자국이 되면서 더 편리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많은 세대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나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의식이 많이 없어져 그저 외국의 한 나라로 생각할 뿐이다. 우리세대에게는 러시아여행이란 젊은 시절 꿈도 꾸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하여튼 나는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약 두 시간 정도 거리였다. 시차도 우리나라와 두 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방법은 강원도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으나 긴 여행을 할 것인데 처음부터 어렵게 여행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를 탔다.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공항과 비슷했다.

    

 

 

 

 

블라디보스토크공항

 

 아들놈이 공항에서 스마트폰 러시아유심(가격 150루블)을 구입하여 자기 폰에 끼우는 사이에 공항 밖으로 잠시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공항에 들어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공항직원이 무어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상황을 살펴보니 공항에는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야 그런 것이 없으니...... 입구를 찾아 들어가려니 또 모든 짐 검사를 다시 해야 했다. 참 번잡하게 여겨졌다. 러시아는 아직 구 제도가 많이 남아 있어 공항이나 기차역에 들어갈 때 모든 짐을 형식적이지만 검사를 했다. 왜 이런 제도를 아직도 두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들놈이 제 애비를 잃어버릴까 걱정하여 나에게도 러시아유심을 끼운 구 스마트폰을 하나 주었다. 혹시 길을 잃거나 헤어져 있으면 러시아국내번호를 이용하여 통화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심심하면 인터넷을 하고 놀아도 된다고 하였다. 시험을 해보니 모든 것이 잘되었다. 막내라고 어린 줄만 알았는데 애비 걱정도 해주는 다 큰 아이였다.

 

 공항에 들어와 아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가려고 보니 공항철도가 있었다.

 

 

 

공항철도입구와 자판기

 

 

 

공항철도 요금표와 승차권 자동발매기

 

 

 

 

공항철도와 내부

 

 이런 정보도 없이 ‘어떻게 버스를 타고 가나’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철도가 개통되어 있었다. 공항구내에서 바로 오른쪽에 철도역이 연결되어 편리하였다. 공항철도역에서 시간표를 보니 약 1시간마다 한편이 있었다.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까지 지정석(비지니스)은 350루블, 일반석(스탠다드)은 200루블이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음료수 자판기가 있어 사서 먹어 보았다.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하지만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비쌌다. 앞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겠지만 대체로 러시아에서 음료수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비싸다. 유의해야 한다. 일반석을 타고 약 50분이 걸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 아무르만 주변을 달려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공항철도역에 도착했다. 열차는 일반석도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 빈자리는 많았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도중의 아무르만의 풍경

 

 

블라디보스토크시내

 

 숙소로 정한 호스텔이 철도역 근처에 있어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시내를 잠깐 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기에 내일부터 걸어서 구경하기로 하고 잠깐만 이국의 정취를 느끼기로 했다. 도시를 거닐다가 시장기가 돌아 밥을 먹기로 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저녁까지 있으니 배가 상당히 고팠다.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눈에 보인 집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스스로 간판에 소개하고 있는 Porto Franco라는 레스토랑이었다. 1919년에 오픈한 집이라고 하는 보헤미안풍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보르쉬’라는 수프와 ‘까르보나’ ‘파스타’ 등을 먹었는데 ‘보르쉬’는 우리나라 육개장과 흡사했다. 아들과 둘이서 적당히 먹고 후식으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들은 홍차를 먹었다.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먹는 저녁은 그런대로 만족했다. 또 가격도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그 정도는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정도였다.(1,450루블)

 

 

 

 

Porto Franco의 소개글과 입구 전경

 

 

 

 

 

브르쉬와 파스타, 커피와 홍차

 

 

 

Porto Franco 내부 모습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저녁을 먹고 첫날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배정된 방에 들어가니 중국의 대학생들과 스위스의 젊은이를 만났다.(물론 뒤에 이야기하여 알게 되었음) 짧은 영어로 간단히 소통을 하였는데 특히 스위스의 젊은이는 3년을 계획으로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여행 중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고 했다. 잠시도 중간에 내리지 않고 7박 8일 동안 기차만 타고 왔다고 하며,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호주 아프리카를 거쳐 갈 것이라고 자신의 여정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가 준 명함에 적혀있는 블로그를 검색한 아들이 말하기를 상당히 유명한 블로거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입시나 시험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세계를 직접 배우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슴에 새겨졌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