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9 코스(거진항 - 통일안보공원)
해파랑길 49 코스는 거진항을 출발하여 산길을 걸어서 응봉에 오르면 화진포와 화진포해수욕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응봉을 내려오면 속칭 김일성별장이 나오고 해안을 따라 걸으면 초도항이 나타난다. 초도항을 지나 대진항과 대진항해상공원을 지나서 대진등대를 돌아 해안길을 조금 가면 금강산콘도가 나온다. 콘도를 돌아나오며 앞의 경치를 즐기다 금강산로르 따라 조금 가면 통일안보공원이 나온는 12.7km의 길이다.
49 코스 인증대
여기에 도착하니 오후 2시 경이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기에 시간이 매우 어중간하였으나 가는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길을 재촉했다. 어두워지면 적당한 곳에서 숙박을 할 생각이었다.
인증대 옆이 거진항이다. 5백여 년 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큰나루 즉 거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는 거진항(巨津港)은 고성군 거진읍 거진리에 있는 어항(漁港)이다. 해방 전에는 정어리가 많이 잡혀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개나 있었으나 해방 후 갑작스런 정어리 흉어로 어촌이 퇴락하였으나 명태가 잡히면서 다시 변창을 누리게되었다 한다. 한 때는 전국의 명태 어획량 중 60% 이상이 여기서 출하되었다는 항구로, 명태 덕분에 '거진항에는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촌이었다고 한다.
거진항의 모습
거진항에서 내륙으로 들어가 제법 긴 산길을 걸어야 한다. 응봉까지 가는 산길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가는 도중에 별로 뛰어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 속으로 이런 곳을 지나게 한다고 불평을 쏟아 놓았다. 하지만 응봉에 도착해서 보는 풍경은 이 산길을 힘들게 걸어온 보람을 가지게 하였다.
십이지신상
제법 긴 거리를걸어 응봉에 도착해서 보니 해발 122m라고 되어 있다. 해안부터 걸어서인지 상당히 높은 산을 넘은 것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산에 오를 때는 제법 높은 곳에서 오르기 시작하니 높이를 오산하기 마련이다.
이 응봉에 도달하니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스님 두분이 화진포쪽에서 올라왔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멀리 보이는 금강산 비로봉을 보고 예전에 금강산에 갔던 일을 생각했다.
응봉에서 보는 화진포와 화진포해변
응봉에서 화진포쪽으로 내려오면 마주치는 곳이 우리가 세칭 말하는 '김일성 별장'이다.
화진포해안가 산기슭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은 김일성이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와 아들, 딸 등 가족과 함께 찾은 하계휴양지로 화진포 주변에 있다. 김일성 별장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석조 건물로 지은 건물로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건물은 1964년에 별장 터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안보전시관을 새로 지은 것이다. 다소 화려하게 지어진 안보전시관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으며, 북한 관련 자료와 함께 김정일과 김경희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찍은 사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보전시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화진포해변의 가장 잘 볼 수 있는 조망지이다.
김일성 별장의 설명판
김일성 별장의 모습
별장을 내려오면 겨울 화진포가 나온다. 화진포(花津浦)는 거대한 ‘8자 형’으로 둘레 16km,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로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여 겨울이면 고니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갈대가 우거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 화진포(花津浦)는 여름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화진호(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지금의 화진호 자리는 옛날에 부자였던 이화진이라는 사람의 농토였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그의 집에 와서 시주를 청했는데 그때 그 부자는 시주를 하지 않고 똥을 퍼붓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서 시주를 하였다. 이에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곳에 있으면 화를 입을 것이니 따라오라고 하여 며느리는 그 스님을 따라갔다. 며느리가 송정리의 고청고개까지 가서 주위를 돌아보니 함께 오던 중은 사라졌고 자신이 살던 집과 그 일대가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이에 절망한 며느리는 그곳에서 목을 매어 죽었고, 그녀의 넋은 고성 서낭리의 서낭신이 되었다고 하며, 그래서 생긴 이 호수는 그 부자의 이름을 따서 화진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진포 주변을 따라 걸으면 갈매기와 겨울 철새들이 함께 어울려 호수에서 날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직은 겨울 철새들이 제대로 오지 않았는지 그렇게 많은 철새들이 보이지는 않았다. 화진포에서 길만 건너면 화진포해수욕장이다. 화진포해변(花津浦海邊)은 공식 해수욕장으로는 동해안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곳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가 죽음을 앞둔 은서(송혜교)를 업고 걸은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해수욕장 끝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해서 이름이 붙은 금구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화진포해변
화진포해변을 지나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어둠이 빠른 속도로 짙어지는 계절이라 발걸음 을 재촉하여 도착한 곳이 초도항이다. 초도항은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아주 작은 항구로 성게가 특산물로 성게마을이라고도 불리기 대문에 초도항 입구 간판도 성게 모양이다.
초도항의 모습
초도항을 지나 초도해변에서 숙박을 하기로 하고 숙소를 찾았다. 주인이 없어 전화를 거니 곧 와서 방을 내어 준다. 비수기라 방은 거의 비어 있다. 주변에 식당이 없어 주인에게 물으니 조금 내려가면 편의점이 있다하여 찾아가서 저녁을 김밥과 빵으로 때웠다.
초도1리 해변은 화진포 해변과 인접한 간이해수욕장으로, 길이 500m의 깨끗한 백사장을 끼고 있다. 초도2리 해변은 길이 200m의 아담하고 깨끗한 해변이다. 평상시에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 관할 군부대의 협조로 한시적으로 개장된다.
초도해변
다음날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다. 내가 걷는 여정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습관이다. 그리고 저녁은 조금 일찍 마무리하여 휴식을 취한다. 아직 해가 뜨는 시간이 멀었기에 동쪽의 먼 하늘에는 붉은 기운만 조금 보인다.
여명의 모습
길을 계속하여 대진항해상공원에 도착하여 해돋이를 보려고 하니 해상공원이 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 안내문을 보니 오전 9시부터 출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무슨 고원에 입장 시간이 있는지 조금 의아스러웠다.
해상공원을 돌아 나가니 대진의 가장 번화하게 보이는 거리가 나오고 그 거리를 돌아가니 대진항이 나온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항구의 어판장을 보니 새벽에 들어오는 어선들이 잡아온 생선을 경매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의 큰 경매장과는 거리가 먼 조그마한 경매지만 소박한 맛이 더 정겹게 보였다. 잠시 구경하다가 낯선 생선이 보여 무엇이라 물으니 아주머니가 도치라고 하였다. 남쪽 바다에서는 볼 수가 없는 생선이었다.
어판장과 경매의 모습
대진항에서 보는 해돋이
대진항
대진항(大津港)은 고성군 현내면(縣內面)에 있는 어항으로 동해를 이어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마지막으로 닿는 최북단의 항구이다. 현내면의 면소재지인 대진리(大津里)에 있으며, 1920년에 처음으로 어항(漁港)이 축조되어 1935년 동해 북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원활해짐에 따라 명태, 청어, 정어리 등을 잡는 큰 어항으로 발전하였다. 아침이면 밤새 잡은 수산물을 실은 어선들이 항구로 들어와 위판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용한 항구의 모습과 깨끗한 백사장은 그 위쪽으로는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대진항을 돌아 가면 대진등대가 나온다. 대진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고,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며 환상적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대진등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동해안 최북단의 어로한계선임을 표시하면서 어선들이 월북 조업하지 않도록 안전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무인등대인 저진도등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대진등대
대진등대에서 보는 풍경
대진등대를 내려와 해안길을 걸어가면 금강산콘도를 지나가게 된다. 금강산콘도 앞바다의 풍경은 섬이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어 천혜의 해수욕장을 만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섬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모래사장으로 연결되었으니 섬이 아닌가?
금강산콘도 앞 풍경
대진리해변
멀리 보이는 통일안보공원
비로소 통일전망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했다. 예전에 몇 번이나 와 본 곳이지만 많이 변했다. 동해대로 방면 주차장 위쪽에 호림유격전적비는 한국전쟁 직전 북한 무장 게릴라의 남침을 저지하다가 희생된 호림유격대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전적비 상단에 횃불을 높이 든 유격대원 동상이 불굴의 기상을 보여준다.
이제 걷는 코스는 다 끝났다. 50 코스는 차를 이용해야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