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부처님의 영상이 비친 곳 - 불영사, 그리고 월계서원

학다리54 2019. 7. 18. 18:44

 불영사. 이름도 거룩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언제였던가? 이곳을 와본지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다. 이 주변은 여러 차례 지나갔건만 교통편이 워낙에 불편한 곳이고 이곳만을 목적지로 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제대로 허락하지를 않았서 이곳을 직접 탐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울진을 온김에 꼭 불영사를 둘러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역시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고심하다가 이왕 마음먹은 것 돈이 좀 들어도 가기를 하고 택시를 대절하여 불영사에 왔다. 택시기사가 친절하게도 불영사 매표소에 이야기를 하여 일주문을 통과하여서 불영사까지 운행을 해 주어 시간도 절약하고 편리하기도 했다.

 

 불영사는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천축산 서쪽기슭에 자리 잡은 의상(義湘)651년에 창건한 신라의 옛 절로, 이 절을 중심으로 하원리까지 13km에 걸쳐서 비경을 이루는 불영사계곡이 펼쳐진다. 이 절의 건립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상이 경주로부터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에 들어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또 맑은 냇물 위에서 다섯 부처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내려가서 살펴보니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법()을 설하며 그곳에다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독룡이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은 뒤 용지(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 동쪽에 청련전(靑蓮殿) 3칸과 무영탑(無影塔) 1좌를 세우고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 676년에 의상이 다시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선사촌(仙槎村)에 이르렀는데,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오셨구나." 하면서 기뻐하였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도 불렀다. 의상은 이 절에서 9년을 살았으며, 뒤에 원효도 이곳에 와서 의상과 함께 수행하였다 한다. 청련전과 무영탑은 환희료(歡喜寮)와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應眞殿)만은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그 후 1609년 진성법사(眞性法師)가 재건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손으로 중수가 거듭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730호인 불영사 응진전(佛影寺應眞殿)을 비롯하여 극락전 대웅보전 명부전(冥府殿) 조사전(祖師殿) 칠성각 범종각 산신각 황화당(黃華堂) 설선당(說禪堂) 응향각(凝香閣)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인 불영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인 불영사부도(佛影寺浮屠), 그 밖에도 대웅전 축대 밑에 있는 석귀(石龜)와 배례석(拜禮石불영사사적비 등이 있다.

 

불영사 일주문

 

일주문 옆길- 대개는 이 길을 걸어 불영사로 간다.

 

불영사로 들어가는 도중에 있는 석교와 계곡

 

택시기사의 친절함으로 쉽게 불영사에 도착했다. 크지 않은 자그마한 절이다.

 

불영사 근방의 채소밭

 

절 입구에서 보는 전경

 

천축산 불영사 안내도- 상당히 자세하다.

 

불영사 연못과 법영루

 

발길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보이는 것이 큰 나무다. 보호수란다.

 

보호수(은행나무)

 

불영사 대웅보전

 

불영사 삼층석탑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대웅보전 옆의 황화전

 

전각 사이의 아름다운 모습

 

마당에 피어 있는 초롱꽃

 

대웅전의 영산회상도

 

응진전

칠성각

 

법영루와 불전사물 설명

 

불영사 주변의 바위

 

불영사의 여러 모습

 

 사실 불영사를 가기 전에 울진 읍내를 조금 걸으며 구경을 하였다.

시내의 다리를 건너는데 왜가리 같은 새가 냇물에 있는 모습이 보여 담았다.

 

 

 

*월계서원

 

시간의 순서로는 이 월계서원 (月溪書院)을 불영사보다 먼저갔다

 

 월계서원은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서원으로 울진장씨의 관시조(貫始祖)인 장말익(張末翼)과 장말익의 8세손 장양수(張良守)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해마다 10월 정일(丁日)에 향사를 올린다. 1856년 향유들의 장계에 의해 울진읍 호월리에 월계사(月溪祠)가 세워졌고, 1862년에 예조 관문승원예에서 사액을 내려 월계서원이 되었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손되었다가 1925년 현 위치에 복원되어 세덕사(世德祠)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광복 후 월계서원으로 복칭되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월계서원(月溪書院)’,‘월계강당(月溪講堂)’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린 서원이 있다. 서원 뒤 내삼문을 지나면 사우인 경덕사(景德祠)1998년 건립한 국보각(國寶閣)이 나오는데 국보각 안에는 국보 제181호인 장양수 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장양수 급제패지는 현존하는 패지(牌旨; 위임장 등의 공식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 과거제도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을 잠가 놓아서 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외부만을 보고 돌아왔다.

 

월계서원, 월계강당

 

 

월계서원과 주변의 여러 모습

 

 월계서원과 불영사를 갔다와도 택시를 이용하였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한잔하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었다.

 카페를 나와 울진시외버스터미널로가 친구들을 기다리나 곧 부산과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서 친구들이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이 친구들과 울진 금강소나무숲길과 삼척 무릉계곡을 구경하러 다니며 밤에는 한잔 술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밤 새워 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 벗과 함께 아무른 이해가 없이 그저 떠들면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로 밤을 보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