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카파도키아 3 (그린투어)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어를 따라가는 여정을 택했다.
카파도키아는 너무나 넓고 명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않아서 자신이 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투어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 투어의 종류로는 조금 먼 곳을 가는 그린 투어, 우리가 어제 걸었던 코스인 레드투어, 그리고 가까운 로즈 밸리를 트레킹하는 로즈밸리투어, 발룬을 타는 발룬투어 등이 있어 각자의 여정에 맞추오 이용하면 된다.
우리는 첫날에는 투어를 선택하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여러 명소를 구경하였고, 괴레메 야외박물관을 가는 여정도 우리 일정에 맞추어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머지 코스는 걸을 수 없는 먼 곳에 위치하기에 할 수 없이 그린투어를 선택했다. 투어 버스가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면 관람만 하면 되는 편리한 여정이다.
아침 일찍 발룬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투어 버스를 타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이 데린쿠유 지하도시다. 이 데린쿠유는 히타이트시대부터 비잔틴까지 지하도시가 만들어졌는데,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의 역사학자 크세노폰의 언급이 있으나 정확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의 어느 날, 마을에서 닭 한 마리가 작은 구멍 속으로 빠졌는데 나오지 않자 주인은 땅을 파기 시작했고, 뜻밖에도 그 아래에서 사람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큰 지하동굴이 발견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인근의 지하도시가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했고 유네스코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민간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데린쿠유 지하도시(Derinkuyu Underground City)는 터키 중부 카파도키아 지역 데린쿠유 행정구에 있는 개미굴처럼 지하 곳곳으로 파내려간 깊이 약 85m 지하 8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도시이다. 현재 발굴된 깊이가 지하 8층인데 아직도 더 깊은 곳을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 통로와 환기구가 지하 각층으로 연결돼 있고 교회와 학교, 그리고 침실, 부엌, 우물 등이 존재한다. 이 곳은 지하로 계속 파 내려갔기 때문에 지금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으나 최대 5만 명이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큰 곳이다.
터키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많은 지하도시 중에서(지금까지 40개 이상이 발견되었다) 가장 큰 곳으로, 최초의 터널과 동굴들은 4천 년이나 그 전에 처음으로 파였던 듯하며, 기원전 700년에는 그 안에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처음에는 이 땅의 정착민들은 혹독한 날씨를 피해 기꺼이 지하로 들어가 보호를 받았지만, 그 뒤에는 종교박해를 피해 온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7세기부터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하는 데 사용하는 등 주로 종교적인 이유로 은신하려는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곳에서 현재 발견되는 거주지 유적은 모두 AD 5~10세기의 중기 비잔틴시대에 속하는 것들이다.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 온갖 어려움을 감수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뿐이다.
내부에는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둥근 바퀴모양의 돌덩이로 통로를 막을 수 있게 하였고 독특한 기호로 길을 표시해 침입자는 길을 잃도록 여러 갈래의 통로를 뚫어 놓았다. 현재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화살표로 길 표시를 선명하게 해 놓았다. 화살표를 따라 가며 안내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괴레메파노라마에서 보는 괴레메의 전경
데린쿠유입구
데린쿠유의 여러 모습
데린쿠유지하도시의 전체 모형도
데린쿠유를 구경하고난 뒤 으흘라라 계곡의 끝 부분에 있는 셀리메 대성당(수도원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식 명치은 성당이다)으로 간다. 셀리메 대성당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동굴집이다. 동로마시절 기독교 박해를 피해 찾아온 신자와 성직자가 살았던 곳으로 실크로드를 이용하던 상인들도 여기서 묵고 갔다고 한다.
개미집 같기도 하고 지상에 올라온 지하도시 같기도 한 이곳의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은 각자의 방으로 사용하던 구멍이었다. 천정에 구멍을 뚫어 창과 환풍구로 사용하고 벽에는 홈을 파서 비둘기의 집으로 사용했단다. 왜냐하면 이들은 비밀리에 통신을 하는 수단으로 비둘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방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예배당이 있는데 굴을 파고 그 안에 2층짜리 교회를 만든 것이 놀랍다.
전에는 6층까지 개방했다 하는데 이곳이 좀 미끄럽기에 낙상사가 있은 후로 3층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실내로 들어가서 바깥을 보면 자연스럽게 뚫린 동굴의 입구가 있고, 그 앞으로 펼쳐진 계곡의 자연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하늘과 자연을 보고 살았으니 데린쿠유지하도시 사람들보다는 더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즈막한 기둥을 따라 깨알같이 새겨놓은 성인들의 그림과 벽화들은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8세기경에 그려졌다는 프레스코는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셀리메 대성당 표지
대성당의 전경
여러 곳의 모습
셀리메 대성당에서 보는 풍경 - 푸른 하늘이 너무 맑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에머랄드나 사파이어와 같이 파란 하늘로 슴을 탁 트이게 하는 하늘이다.
암굴의 내부
물고기 문양이 그려져 있는 입구
교회의 내부 - 벽화가 퇴색되어 그 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셀리메 대성당 곳곳의 모습
셀리메대성당을 나오니 점심 때가 되었다. 투어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주는대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냥 점심을 먹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리가 머문 숙소에 아침에 보니 한국 아가씨가 있었는데 투어도 같이 하게 되어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연말에 터키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서른은 되지 않은 듯한 나이인데 얼굴이 우수에 젖어 있는 그런 인상이었다. 그 아가씨와 투어를 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점심을 먹은 식당과 점심
점심을 먹고 으흘라라 계곡으로 갔다. 으흘라라 계곡은 물이 흐르고 초록의 숲이 있는 곳이다. 카파도키아는 붉은 바위와 기이한 버섯 모양의 바위 집들로 우주의 어느 행성 같은 비현실적 도시인데 이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같은 모습이다. 100~200m에 이르는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같이 늘어선 이런 협곡이 16km가량 이어진다는데 오르막이라고는 없는 걷기 좋은 길이다.
카파도키아 곳곳이 초기 기독교시대에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이곳도 주변에는 5000호의 주택과 105곳의 교회 흔적이 남아있다. 트레킹 출발 지점에 있는 아가칼티교회 벽면에는 그리스도 승천 장면이 그려져 있다.
트레킹은 멜렌디즈라는 이름의 제법 큰 하천을 따라 걷는다. 겨울이지만 물이 얼지 않고 흐르며, 주변의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여러 가축들도 만난다. 카파도키아에서 항상 건조한 동굴 집만 보다가 물과 숲을 만나니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지며 여유로워진다.
이 계곡에서도 사람들이 동굴에 살았던 흔적으로 절벽에 구멍들이 보인다. 아래쪽 큰 구멍에는 사람이 살았고, 위쪽 작은 구멍들은 비둘기 집이었다고 한다. 당시 비둘기 고기는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됐고, 비둘기 배설물은 프레스코화의 회벽을 만드는 데 쓰여 지금까지도 선명한 색상을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비둘기 배설물은 비료와 연료, 무기를 만드는 데도 사용됐고, 비둘기 알의 흰자는 벽화를 코팅하는 데 쓰였다 하니 당시엔 비둘기가 가장 중요한 가축이었던 셈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이지만 으흐랄라 계곡은 봄기운이 완연한 한국의 어느 뒷산에 오른 것 같은 풍경으로, 한쪽으로 흐르는 개울물과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면 평범한 사람들이 그저 산책을 하는 듯한 장소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두어 시간 정도를 걸으니 이 계곡 트래킹은 끝나고 다시 뾰족 솟아오른 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담을 하나하면 이 계곡을 걸어가는 도중에 앞에서 오는 젊은 남녀가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훤출한 키에 아주 선량하게 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의 웃음이 너무 예뻤다. 생긴 모습도 아주 착하게 보이는 눈에 뜨이는 미인이었는데 마음도 아주 착한듯 했다. 무언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스의 나프폴리오에서 보았던 중국여인은 눈에 확 뜨이는 미인이었고 오늘 길에서 만난 아가씨는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 주는 미인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주 상쾌한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찍은 풍경 - 저 멀리 산위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다.
하늘은 너무 푸르다.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계곡입구에서 계곡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프레스코 벽화가 제법 선명한 조그마한 암굴교회를 만난다. 그리스도의 승천이 그려져 있는 아아찰트교회이다. 조그마한 교회라 잠깐 구경하고 내려가면 계곡을 접한다. 계곡은 우리나 여기나 비슷하다.
계곡 설명도
으흘라라계곡 입구 주변 - 깍아지른듯한 암석들이 보인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 오염원이 없어 맑은 것 같다.
계곡입구의 여러 모습 - 암벽 중간에 옛날에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가 보인다.
으흘라라계곡에서 갈 수 있는 곳의 이정표
계곡 중간중간의 여러 모습
이 계곡은 아주 평탄한 길이기 때문에 나이가 든 사람이든 어린아이든 전혀 무리가 없이 누구든지 쉽게 걸을 수 있다. 중간에는 찻집과 휴식처 그리고 식당도 마련되어 있으니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거닐면서 여유로움을 즐기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좋은 길을 조금 급하게 걸었다. 투어를 따라 왔기에 시간을 어긋날 수는 없기에......
이런 점이 내가 투어를 하지 않는 이유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옛날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있었다는 거주지
기분 좋게 으흘라라계곡 트래킹를 마치니 버스가 우리를 기념품과 보석을 파는 가게로 인도한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계획은 전혀 없으므로 구경만 하고 거기에서 주는 차를 마시고 나왔다. 가게를 나와서 간 곳이 석양의 아름다운 괴레메를 볼 수 있는 피전밸리전망대인 괴레메 파노라마다.
이곳에서는 괴레메의 대부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어제 걸어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들.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로즈밸리나 레드밸리도 한눈에 들어온다. 괴레메를 일망무제로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기에서 괴레메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피전밸리전망대에서 괴레메파노라마를 보는 풍경
피전밸리전망대 괴레메파노라마의 일몰 풍경
서서히 해가 진다. 아침에는 발룬을 타고 하늘에서 해가 떠는 광경을 보았는데 저녁에는 땅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본다, 하늘에서 보았던 괴레메의 풍광을 이제는 땅위에서 전체를 다시 본다. 걸어 다니면서 보는 풍경은 자세히 볼 수 있으나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하늘에서나 이 피전밸리전망대에서 괴레메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나무를 보아야 좋은 것도 있고, 숲을 보아야 좋은 것도 있다.
나자르 본주우 ( 터키어: Nazar boncuğu )
이 전망대의 가게 앞의 나무에 푸른 빛을 띤 사람의 눈 모양의 물건이 달려 있다.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푸른 빛깔의 물건은 나자르 본주우(터키어: Nazar boncuğu)로 사람들의 불행을 막아준다는 터키의 부적이다. 푸른 유리에 눈이 그려져 있으며, 재앙을 물리친다고 한다. 터키의 대표적인 기념품이다. 옛날 사람들은 악마의 눈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해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마의 눈을 가두어 놓은 부적을 만들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원시 샤마니즘 사회에서는 이같은 부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여러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개가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자신을 지켜주는 나자르 본주우 를 하나쯤은 골라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발룬을 타느라고 바쁘게 움직였고 또 먼 곳을 투어를 따라 다니며 여러 곳을 구경하고 난 뒤에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간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아들은 먹는 것을 엄청 중시한다. 그래서 구글에서 그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점을 항상 검색하여 나에게 가자고 한다. 나는 따라가서 맛있게 먹고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식당의 외부와 내부
터키는 이슬람 국가지만 주류도 있어 비교적 자유롭다. 곳곳에서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식당에서 팔지는 않는다.
유명한 항아리케밥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카파도키아를 여행할 때 꼭 먹어본다는 항아리 케밥이다. 원래 명칭은 Testi Kebap이다. 이 음식은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고기나 야채들을 함께 넣고 푹 끓여내는 음식이다. 지금은 카파도키아의 명물음식이 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아마도 우리식성에 잘맞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이 있어야 밥을 잘 먹는데 항아리속에서 푹 고아지면서 국물이 흥건하게 생긴다. 밀봉된 항아리를 뚝 깨어서 먹는 재미도 있다.
저녁식사
저녁을 먹고 시내를 좀 배회하니 아직은 비수기라서 관광객이 적어 시내가 좀 하가하다. 이곳 저곳의 가게를 눈으로먼 쇼핑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발룬을 탔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행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