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터키문명 산책 - 카파도키아 1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스문명을 보고 싶으면 그리스보다 터키를 가라고, 그만큼 터키에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자취가 그리스보다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터키에 왔다.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터키의 카이세르공항에 도착했다. 교통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아침에 크레타에서 아테네로 비행을 하고 다시 이스탄불을 거쳐서 카파도키아의 카이세르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카파도키아는 내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정을 짜는 아들에게 강권하여 넣은 코스다. 내가 꼭 가야된다고 한 곳이 바로 이 카파도키아와 트로이다. 아들은 처음에는 이미 계획이 다 짜였다고 불평을 했으나 아버지의 요청을 수락하여 계획을 다시 수정하였다.
이런 점이 내 아들이지만 참으로 고맙다.
카파도키아는 너무 넓기 때문에 숙소를 잘 정해야 한다.
우리는 괴레메에 숙소를 정하였으므로 공항에서 괴레메로 숙소를 찾아가니 먼저 카파도키아에 가면 꼭 해야 되는 발룬 투어를 신청하라고 한다. 한 사람당 130유로라는 적지 않은 돈을 달라고 하지만 카파도키아에서 발룬을 타지 않으면 어디에서 발룬을 타겠는가? 죽기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카파도키아 발룬 타기라고 모든 여행안내서나 사이트에서 떠들고 있다. 얼마나 좋은가를 직접 타 보아야 한다.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발룬을 타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한다. 아들은 처음부터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좀 있어서 타지 않겠다고 했으나 애비가 여기에서 발룬을 타지 않는 것은 앙꼬가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고 강권하여 같이 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발룬을 타기 위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발룬이 뜨는 장소로 갔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면서도 발룬을 띄우기 위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나니 오늘은 발룬이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독관청이 일기가 좋지 않다고 운행허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로 바람도 불지 않는데 엄격하게 규정을 지키는 것이다. 아마도 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듯하였다.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주인이 말하기를 최근 한 열흘 동안 발룬이 한번도 떠지 않았다 한다. 어쩔수 없이 내일을 다시 기약하며 아침을 먹고 괴레메 탐방에 나섰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아들과 나는 무작정 걷는 것을 특기로 한다. 괴레메의 전 지역을 걷기로 하고 구경을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의 바위 중 가장 유명한 바위
하얀 눈이 보이는 카파도키아의 평원
이름도 모르는 카파도키아의 풍경 - 길을 걸으며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우리 상식을 벗어나 그 앞에 서면 충격으로 몸이 굳어버리는 풍경을 가진 곳이 여러 군데가 있다. 터키 중부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는 그런 곳이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앞에 섰을 때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 예부터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였다. 기원전 18세기에 히타이트인들이 정착한 이후, 수많은 제국이 차례로 이곳을 점령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의 망명지가 되었던 이곳은 초기 기독교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기독교가 아직 공인되지 않았던 로마시대에 탄압을 피하여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암굴교회와 수도원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초기 기독교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8~9세기 전반에 비잔틴 제국에서 일어난 우상파괴 운동으로 인해 암굴교회의 수많은 초기 벽화들이 파괴되어 지금 제대로 모습이 전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고 그 흔적만 보는 것이 안타깝다. 11세기 후반에는 터키 셀주크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카파도키아도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분쟁이 아니라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했다. 모스크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건축물이 파괴되지 않아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아 전한다.
숙소를 출발하여 오늘은 자유롭게 구경을 하기로 하고 젤베야외박물관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 거리는 무난히 걸어서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라 생각하고 발길 닫는대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차가 없고 버스를 이용하기가 어려워 좀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유적지는 내일 투어를 따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걸으면서 구경하기로 한다.
12월이지만 참 맑은 하늘은 우리를 상쾌하게 만들었고 또 제법 걸으면 이마에 땀이 맺히기도 하였다. 도로변이나 계곡근처를 보면 제법 눈도 쌓여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괴레메 시내 풍경
길을 걸으며 보는 여러 풍경
차츰 차츰 바위의 모습이 우리 눈을 자극한다. 기괴하게 보이는 바위들이 눈에 보이며, 겨울이라 눈이 쌓여 있으며 맑게 푸른 하늘이 우리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리 저리 눈을 돌리며 주변을 구경하며 처음 도착한 곳이 차우쉰이라는 옛날의 마을과 세례자 요한 교회다. 지금의 마을 위에 있는 옛날 사람들의 거주지는 암벽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살았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카파도키아지역에는 큰 돌기둥이나 큰 암벽의 중간중간에 굴을 파고 사람들이 살아왔다. 왜 그들은 넓은평지를 두고 암벽을 파고 살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암벽 동굴집의 여러 모습
마을을 조금 지나 교회의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제법 언덕을 올라가면 세례자 요한 교회가 나온다. 교회라고 설명을 하였기에 교회인가 하고 구경을 하지만 별다른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구경하고 마을을 벗어나서 점심을 먹으려니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 가게가 있어 음료수를 사니 식당을 겸하고 있다, 그래서 요기를 할 수 있는가 물으니 간단한 음식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주문을 하고 잠간 기다려 식사를 하고 다시 카파도키아의 풍경을 보기 위해 제법 높은 언덕에 올라간다. 무엇인가 이름이 있었다고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은 곳이다. 이 언덕에서 보는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각양 각색의 암석의 모습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우리가 착륙해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우리 인간이 어찌 알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주변의 경치를 찍은 동영상
그 어떤 거대한 손을 가진 거인이나 신이 있어 어느 한가로운 오후, 심심풀이로 진흙을 이겨 빚어 놓았을까? 어떻게 이런 자연 풍경이 만들어졌을까? 학자들은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라 한다. 약 900만년전부터 300만년전까지 계속된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온 땅을 뒤덮었고,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어 신비한 자연이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뒤에 사람들은 이 기암괴석에 굴을 파고 거주를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풍경을 보고 한 가지 오해를 한다. 우리가 재미있게 본 영화 가운데 스타워즈라는 영화가 있다. 사람들은 그 스타워즈의 동굴 집이나 배경이 되는 지구가 아닌 듯한 계곡들을 이 카파도키아에서 찍은 것으로 오해한다. 너무나 이 카파도키아가 우리 지구의 모습이 아니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카파도키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스타워즈는 튀니지의 마트마타사막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곳에서 카파도키아의 경치를 조망하고 다음으로 간 곳이 차우쉰동굴교회다. 여러 곳의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 뒤의 거대한 암석 절벽에는 교회가 있다. 차우쉰동굴교회이다.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따로 내어야 한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지 한가로이 앉아 있는 관리인에게 표를 끊으니 동양인이 이곳을 찾는 것이 신기한 듯이 본다. 입장료를 내고 철계단을 올라가 동굴로 들어가니 초기 교회의 성화가 벽에 많이 보인다. 오랜 세월에 많이 퇴색된 것 같고 또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초기 기독교의 성화로 가치가 있다.
마을과 교회 앞에 차우쉰이라는 표지
차우쉰동굴교회의 전경
차우쉰동굴교회 내부의 초기 기독교 성화들
교회에서 보는 전방의 풍경
멀리서 보는 차우쉰동굴교회 전경
차우쉰동굴교회를 구경하고 파사바아로 가는 도중에 파사바아와 유사한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사실 어느 곳을 꼭 정하고 구경을 하지 않아도 곳곳에 버슷 모양의 바위들이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 곳이 너무 많다. 그리고 모두가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카파도키아 곳곳의 모습
길을 걸어 가면서 곳곳에서 기괴한 모습을 가진 바위들을 보면서 감탄을 한다. 이것이 우리가 걸으면서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다. 차를 타고 가거나 투어를 따라 가면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가 쉽다. 정해진 곳을 정해진 길로만 가기에 여행사나 가이드가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관광객이 본다. 하지만 나와 아들은 우리 발길이 닫는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이정표를 보고 여기가 어딘지를 알아 차린다. 물론 현대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가 큰 공헌을 했다. 구글 지도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구경을 하면서 길을 가니 카파도키아의 바위군중 가장 유명한 파샤바아에 도착한다.
파샤바아(Paşabaĝa) 언덕에서 굽어보면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바위 위에 송이버섯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둘 혹은 셋까지 올라앉아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런 바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만화영화 스머프가 떠오른다. 만화에서 스머프들은 버섯모양으로 된 집에서 살고 있다. 이곳이 스머프가 사는 마을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버섯처럼 생긴 바위도 한 몫을 하지만, 버섯바위에 구멍을 뚫어 생활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사람들이 거주를 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파샤바아는 터키어로는 ‘장군의 포도밭’이라 한다. 이곳에서 포도를 많이 재배했다고 하여 그럼 의미가 붙여졌다. 화산 폭발로 퇴적된 지층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독특한 모양을 만들었는데 누가 보아도 송이버섯 모양이다.
파샤바아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기둥위의 성자’라고 던 시몬이 수도한 곳이다.
바위를 파서 거주했던 집의 모양
파샤바아의 가장 상징적임 바위
파샤바아의 여러 모습들
파샤바아를 구경하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젤베야외박물관으로 간다.
젤베야외박물관은 괴레메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이다. 9~13세기 기독교도들이 은둔하면서 살았던 곳으로 교회와 수도원이 남아 있다. 이 계곡에는 15개의 교회의 흔적이 있는데 성화는 없고 여러 종교적 상징이 그려져 있다. 주거 지역에는 저장 시설도 따로 갖추고 있었으며 2층과 3층 등 각 층의 굴이 작은 땅굴로 연결되도록 유기적으로 설계됐다. 1950년대까지 이 지역에서는 실제 사람들이 살았는데 동굴의 붕괴 위험이 높아지면서 터키정부가 1952년 지역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켰다. 이 젤베에서는 교회 외에도 계곡의 독특한 경치 자체가 볼거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야외박물관은 아주 장소가 넓어 한바퀴를 도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마시라. 이정표가 이 야외박물관을 한 바퀴 빙 돌아 구경하도록 만들어 놓여있으니 그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젤베야외박물관 표지
물고기와 포도 교회 설명
십자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밀 생산 도구
안내 이정표
와이너리 설명
모스크 설명판
벽에 그려진 물고기 모양
수도원 설명
수도원
이 젤베야외박물관은 상단히 크다. 자세히 돌아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린는지 모른다. 그냔 한바퀴를 돌아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자유롭게 다니니 이 정도라도 볼 수 있었다. 투어를 따라 가면 과연 얼마나 볼 수 있을지......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투어 여행객들을 보면, 내가 하루를 소비하여 구경하는 곳도 30분도 안되어 구경을 마치고 가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심지어 진짜 구경은 하지도 안하고 겉 모양만 얼핏 보고 가는 것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는 투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젤베야외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와서 카페에 앉아 괴레메로 돌아갈 생각으로 버스를 물어보니 조금 있으면 온다고 한다. 카페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고 아들과 오늘 구경한 여러 곳의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가 와서 타고 괴레메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적어도 15Km는 넘는 거리를 걸었는 것 같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고 나갔는데 우리집이라는 한식당이 있다. 그 옆에는 중국집이 있는데 아들과 오랜만에 한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여행중에는 항상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을 불문율로 했지만 오랜만이라 아들도 동의한다. 식당에 가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밥을 먹으면서 왁짝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모두들 투어를 따라 다닌 것 같다. 식당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터키인 부부가 운영하는데 그런대로 한국 음식 맛을 내고는 있었다. 비빔밥, 불고기 김치찌개 등 등 많은 종류의 한국 음식이지만 재료가 터키산이라 ......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제법 피곤하다. 아마 오늘 제법 많은 거리르 걸은 듯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발룬을 타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