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그리스문명 산책 - 신들의 고장 아테네 1
유럽 문명이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심장 아테네
아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계획하고 여정을 의논하면서 일정을 짜 보았다. 아들이 핀란드에 공부를 하고 있어 일단은 내가 핀란드로 가야하는 여정이다.
핀란드에서 몇 일을 머무르다가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서로 메일과 카톡으로 일정을 의논한 결과 고대 그리스문명을 돌아 보기로 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여행하려고 계획을 잡고 나서는 세부적인 계획은 아들이 탐구하여 나에게 알려 주었는데 대개 그리스와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세부적인 것은 아들에게 맡기고 터키의 카파도키아와 트로이는 꼭 가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아들이 이 장소를 고려하여 계획을 짰다. 아들은 대학에 가기전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을 다니는 지금도 경영학이 전공이면서 사학울 부전공으로 할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다. 이 점은 나와 취향이 같아서 관심 이야기의 주제가 비슷하여 말이 잘 통하기도 한다.
아들과의 여행에 대한 추억으로 지난 2014년 여름에 둘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한달을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러시아를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게 난다. 여러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한달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면서 어떻게 아버지와 성장한 아들이 한달이나 한께 여행을 하였는지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우리는 무사히 그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이헤의 폭과 깊이를 더 했고, 이번에는 다시 유럽고대문명을 같이 즐기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첫 여행지는 핀란드였지만 핀란드는 지나가는 과정에서 여정이었기에 따로 글을 작성하였고 본격적인 여정은 그리스와 터키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저번 러시아여행을 경험으로 이번에는 아들과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 핀란드를 떠나 그리스를 가면서 둘이서 여행의 불문율을 서로 말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거스러지 않도록 서로 노력한다.
2. 먹는 것은 전적으로 아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존중한다. 아들은 먹는 것을 중시여기는 여행철학이다.
3. 되도록이면 시간을 아끼는 계획을 짜서 여행한다.
4. 저번 러시아여행과 같이 되도록 걸어다니며 스스로 여행을 즐긴다.
5.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꼭 가보도록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불문율을 서로 지키도록 노력하면서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아테네로 가면서 이번 여행은 시작된다.
아테네공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아테네 시내에 미리 예약해 둔 호텔(Hotel Delphi)로 가서 짐을 내리고 늦은 저녁을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테네 시내를 구경하러 나갔다. 여행은 전적으로 아들이 가자는 곳을 나는 따라만 가면 되는 참 편리한 여행이다. 저번 러시아 여행에서 경험한 것 같이 아들은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전날 저녁에 나에게 이야기하는 기특한 면이 있으니 나는 그저 가자는 대로 가면 된다.
호텔을 나와 걸어서 파르테논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가면서 시내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간다.
제법 시내를 구경하면서 다다른 곳이 아크로폴리스의 한 측면인 모나스티라키광장이다.
시내에 서 있는 조상 - 누구의 상인지는 모르겠다.
아테네 시내의 모습
이 광장은 아테네의 중심광장으로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과일상과 노천 카페와 온갖 물품을 파는 가게로 흥청거린다. 특히 신발이나 가방등을 파는 가게가 많은데 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누르느라 힘이 들었다. 특히나 신발은 가죽인데도 가격이 아주 저렴하여 그냥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 시장 골목을 조금 들어가면 우리나라 벼룩시장과 같이 오래된 여러 장식품과 그림을 파는 가게도 구경할 수 있다. 이 골목길의 가게에서는 조그마한 기념품등을 사기에는 아주 편리하다. 또 여러 가지의 그림도 있었는데 여행을 마치는 시기이면 몇 점을 사고 싶었으나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물건을 사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 눈으로만 구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참고로 이 광장의 이름은 '작은 수도원'이라는 뜻인데 광장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아테네에 머무르면서 계속 이 광장을 와서 시장의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다.
또 이 광장 주변에는 고대 아고라와 로만 아고라등 등 많은 유적지를 볼 수 있고, 또 이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언덕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좋은 구경이다.
광장모퉁이에 있는 수도원 - 뒷편 멀리에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 보인다.
광장의 모습
광장의 가게들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보이는 여러 장식품등을 파는 가게
광장에서 시장의 여러 모습을 구경하면서 어디에서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생활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향해 걸어 간다. 곳곳에 고대의 유적이 즐비하게 있는데 모든 것을 다 구경하기에는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지나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조금 올라 가면 처음 눈에 띄는 곳이 '하드리아누스 도서관(Hadrian Library)'이다. 서기 132년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황제시절에 지어진 가장 큰 도서관이라 한다. 아테네의 번성했던 학문과 예술의 학교이자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였던 장소이다. 명칭은 도서관이지만 교회나 그 밖의 건물이 표지판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옛자취만 남아 있을뿐이다. 이 유적지는 매우 특이하게 매표소가 유적지 안에 있으니 표를 구입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하드리아누스도서관의 여러 모습 - 그 당시로는 얼마나 웅장하고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을 조금 지나면 유명한 '로만 아고라(Roman Agora)'를 만난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으로, 그리스인들은 이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아고라(Agora)’라는 말은 원래 ‘시장’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아고라가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
이 이름 그대로 로만 아고라(Roman Agora)는 아테네에 있는 고대 로마 시기의 유적지다. 아고라치고는 규모는 크지 않고 폐허로 변하여 유적지로의 존재만 드러내고 있지만 그 유적지안에 바람의 탑(Tower of the Winds)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곳을 둘러볼 가치가 있다. 마케도니아의 천문학자 키루스의 안드로니쿠스가 설계한 '바람의 탑'은 풍향계, 해시계, 물시계 구실을 했다. 건축 연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 이 탑은 높이 13m에 직경 8m로 아고라 동쪽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위치하고 있다.
탑 꼭대기에는 반인반어의 해신인 트리톤 형상을 한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끝이 뾰족한 그의 지팡이가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가리킨다고 한다. 아래쪽에는 여덟 명의 바람의 신이 조각된 프리즈가 있는데, 이 신들은 각각 나침반 상의 해당하는 방향에서 오는 바람을 나타낸다고 한다.
로만 아고아 건축 설명
로만 아고라의 유적
바람의 탑
로만 아고라를 구경하고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도중에는 조그마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곳곳에 보인다. 아테네 시내를 조망하며 한가로이 걸으면서 아들과 그리스 문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도 옛날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좀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식은 아들놈에 비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어 되도록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듣고만 있으리라 생각했다.
멀리서 보면 산위에 웅장하게 보이는 파르테논신전을 향하여 한참을 걸어 드디어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했다. 우리가 역사서에서만 보던 그리고 말로만 듣던 장소이다. 이 곳의 유적은 하나하나를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파르테논신전,아테네니케신전, 에레크테이온신전, 불르의 문, 디오니소스극장, 헤레도스 아티쿠스 음악당, 소크레테 감옥, 필로파포스 기념비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적이 우리의 눈을 끌고 있다. 이 곳을 제대로 돌아만 볼려고 해도 한 나절이상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 아크로폴리스의 핵심인 파르테논신전은 한창 보수공사중이라 아쉬웠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라가면서 보는 아테네 시내 - 푸른 하늘이 더 인상적이다.
멀리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 멀리서 보는 풍경이 더 압도적이며 장엄하다.
아크로폴리스언덕 설명 표시판
아크로폴리스언덕을 올라갈 때 가장 먼저 통과하는 문이 불르의 문이다. 3세기 중반에 헤를리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방어용 성벽의 일부로 지어진 것인데 이 지역을 발굴한 프랑스 고고학자 불르의 이름을 따서 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나의 성벽문임에도 그 크기와 장엄함이 우리를 압도한다, 이 문을 지나서 올라가면 왼편에'아그리파 기념비'가 있다. 아그리파의 기념비는 아테네 동쪽에 있는 이미토스 산에서 나오는 파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BC.178년 페르가몬 왕국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고대 아테네의 국가적 제의인 파나테나이아 제전의 전차경기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받침대 위에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 BC.27년 아테네 사람들이 아테네의 후원자인 로마인 지휘관 마르코스 아그리파의 청동 기마동상으로 바꾼 후 오늘날과 같은 아그리파 기념비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동상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부터 2000년도 더 되는 그 때 이런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특히 산 중턱에 이 크고 많은 돌을 어떻게 옮겨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 당시 노예나 하층민들의 수고가 생생하게 떠올라 고소를 금치 못한다.
불르의 문(Beuie Gate)
아그리파 기념비
아그리파 기념비 설명
불르의 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자그마한 신전이 보인다. 승리의 여신 아테네 니케 신전이다. 전쟁에서 늘 승리하기를 원하던 아테네는 여신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모셨다고 하는데 지금 아테네의 석상은 어디에 있는지....
이곳에서 떠나 버렸다.
아테네 니케 신전을 뒤로 하고 올라가면 파르테논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지나야 하는 관문이 나온다. '프로필라이온'이다.
프로필라이온은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다. 그냥 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독립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파르테논 신전을 완공한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곧바로 그에 걸맞는 프로필라이온의 건설에 착수했다. 프로필라이온은 기원전 437년에 착공되었으나 기원전 432년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곧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건축물이다. 그리고 다음 해인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프로필라이온의 건축은 므네시클레스가 맡았다. 프로필라이온은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경사면에 세워졌기 때문에 계단식 건축물이다.
프로필라이온의 앞과 뒤로 각각 여섯 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졌다. 그 사이에는 여섯 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두 줄로 세워졌다. 북서쪽에는 부속건물인 회화관(파나코테케)이 자리잡았다.
파르테논신전에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잠시 발길을 돌려 간 곳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이 움악당은 아티쿠스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추모하여 세운 극장인데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이었다 한다. 현재에도 객석과 무대를 복원해 야외 언형극장으로 재탄생시켜 아테네 페스티벌 기간에는 각종 연극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 객석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호화로운 극장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헤로도스 아티쿠스 음악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디오니소스극장이 보인다. 오늘날 서양연극의 탄생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극장은 유적으로만 남아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때 지어진 고대 아테네의 극장으로서 드라마 예술의 근원지였으며, 소실되었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예술가이자 집정관인 리코우르고스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후에는 확장 공사를 통해 최대 17,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 상당한 규모였다.
디오니소스극장
티없이 맑은 아테네의 하늘 - 핀란드에서 우중충한 하늘만 보다가 푸른 하늘을 보니 가슴이 탁 트인다.
드디어 그 유명한 '파르테논신전'에 다다랐다. 내가 책을 통하여 보던 그 장엄한 모습은 지금 복구공사중이라 조금 생뚱맡게 보인다. 하지만 그 전체의 규모와 자취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서양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이 신전은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마크로 사용될만큼 유명한 이 신전은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하였다. 그 대부분의 조각은 영국의 수집가인 토마스 엘긴경이 수집하여 '엘긴마블스'라는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언제 역사적 유물이 제 자리에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파르테논의 부조물과 조각상이 파르테논에는 없고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9, 20세기 제국주의의 팽배로 인한 강대국의 약탈이 오늘의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파르테논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전망대가 있다.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내가 이 곳에 왔다'라는 증명을 위해 사진을 짝기도 한다. 전망대에서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의 시가지를 조망해 보는 것도 좋은 구경거리다.
전망대의 모습
파르테논을 구경하면서 쉬다가 다음으로 간 곳이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다. 소크레테스의 감옥은 파르테논에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 곳을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 칭하고 유적지로 보존을 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가면서 구경을 한다. 창살로 막힌 동굴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고 없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장소이다.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지나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서쪽 방향인 입구 쪽을 향해 건너편을 바라보면 삐죽한 기념비가 보이는 곳이다. 필로파포스는 로마 시대 때 아테네에 파견된 사람인데 아테네인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베풀었다. 아테네인들은 그가 죽자 기원전 116년에서 114년 사이에 당시 뮤즈의 언덕 정상에 추모 기념탑을 세웠다. 그 이후로 뮤즈의 언덕은 필로파포스 언덕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 올라와 파르테논을 바라보면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찾아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다. 정작 전경을 볼 수 없는 아크로폴리스가 이곳에서는 훤히 보인다.
필로파포스언덕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
필로파포스 기념탑과 표지판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보는 아테네 시내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중심으로 이 일대를 구경하다 보니 점심 때가 벌써 지났다. 내려 오면서 길가에 많은 카페가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고대 아고라로 향했다. 그런데 무지의 소치라. 예정이 뒤틀리게 되었다. 아고라에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하고 보니 오후 3시면 아고라 입장이 끝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가볍게 그 주위에서 잠깐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시내를 구경하고 이런 저런 곳을 기웃거리다가 호텔 가까운 옷가게에 들렀다. 겨울이라고 생각하여 한국에서 두터운 옷만을 가져갔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하여 옷을 좀 바꾸어야 되었다.
옷 가게에서 셔츠와 니트를 구입했는데 품질에 비하여 가격에 상당히 쌌다, 전체적인 물가가 우리나라에 비하여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하고 저녁을 먹자하니 아들놈이 자기가 생각한 곳이 있으니 가자고 한다. 떠나기 전부터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매 끼니는 아니더라도 한번씩은 좋은 식당에서 즐기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아무 말없이 따라가니 미슐랭 별이 두 개 붙은 Spondi라는 레스토랑이다.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며 격식을 갖춘 웨이트들이 서빙을 하는 곳이었다.
레스토랑의 내부와 외부 전경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부탁하니 팁을 줄 것인지를 묻는다. 준다고 하니 계산서에 덧붙여서 나온다. 참으로 합리적신 계산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가격은 아주 비싸지는 않았다. 물론 아들녀석이 적당하게 시켰기 때문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호화로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자주 먹기에는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지불해야 하였다. 젊은 아들이 나이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 준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모든 경비를 다 된다고 해도 과연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2014년 아들과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러시아여행을 다녀오니 모두들 놀랐던 일이 기억난다. 아들과 아버지의 여행을 나는 또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들에게 지금도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아들이 아니면 내가 감히 한달이상을 배낭을 메고 유럽을 돌아다닐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돌아 오면서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야기 한다. 이런 점이 우리를 좀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자기는 계획을 다 짜 가지고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의견을 묻는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