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오딧세이(Odyssey)

마음대로 가는 발칸 여행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鶴이 날아 갔던 곳들/발따라 길따라

 현대와 과거가 함께하는 낭만의 도시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Beograd/Belgrade)는 인구 약 백이십만 도시로, '하얀'(Beo) '땅'(Grad)이라는 도시 이름에 맞게 건물들도 대부분 흰색으로 도색하게끔 조례가 잡혀 있다고 한다. 칼레메그단이라고 부르는 고대 로마시대의 성채가 있는 석회암대지를 중심으로 사바강이 도나우강에 합류하는 지점 우안에 위치한다. 도시의 역사는 BC 4세기부터 시작한다. 발칸 여러 민족의 항쟁중심지로 동로마 제국이 쇠락하고 세르비아 왕국이 일어서면서 거점으로 주목받았으며, 헝가리 왕국 역시 거점 지역으로 베오그라드를 주목하여 점차 중심지가 되어 갔다1521, 메흐메트 2세의 증손자인 쉴레이만 1세는 기습적으로 베오그라드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300년 이상 머물렀으며, 1878년 세르비아가 베를린 조약의 결과에 따라 독립을 쟁취했을 때 비로소 수도로 확정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스 독일에 점령되었으나, 시민들의 저항과 소련군과 티토 수상이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해방군에 의하여 194410월 해방되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진통 끝에 신생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수도로 결정되었으며,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NATO 군대의 폭격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거리에는 폭격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 주는 곳이 많다. 2006결국 세르비아 공화국만의 수도가 되었다. 베오그라드 거리에는 고층건물과 상점이 늘어서는 등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거리가 건설되었으나, 지나간 파괴의 역사 때문에 고대나 중세의 유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늦게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방향감각이 무디다. 버스에서 같이 온 말레이지아 청년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르비아 돈을 환전을 못해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기가 어려웠는데, 그 청년이 버스비를 내어 주고 자신들의 숙소와 비슷한 방향이라 함께 버스를 탔다. 운이 좋게 버스안에서 세르비아 처녀에게 숙소를 물으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자기 집 부근이라 하면서 같이 버스를 내려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숙소는 좀 묘한 위치에 있었다. 베오그라드의 낭만이 물씬 느껴지는 스카다리야 거리라는 곳이다. 상세한 설명은 뒤에 다시 하겠다. 밤이 늦어 숙소에 들어가 먼저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숙소에서 식권을 주면서 식당을 가르쳐 준다. 아마 체인을 맺은 곳인가 보다. 식당이 스카다리야 거리에 있었다. 어제 밤늦게 도착하여 주변을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유명한 거리옆이 숙소다. 식당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집이었고, 음식도 풍부하고 맛이 있었다. 여행중에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집이다.

 

 

 

식당 입구와 전경

 

 

풍성한 아침

 

 

식당의 메뉴판

 

 

메뉴를 그려 놓았다.

 

 

숙소 부근에 있는 Sebils Fountain

 

 베오그라드를 모르면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가 운이 좋게도 스키다리야거리 바로 옆이었다.

 

 예술의 거리로 잘 알려진 스카다리야 거리의 또 다른 이름은 보헤미안 거리인데 19세기 중반부터 세르비아에서 활동하는 유명 예술인들의 주 무대도 베오그라드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곳이다. 울퉁불퉁 자갈길로 된 약 500m 정도의 길을 걷기는 다소 불편하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거리를 즐기라는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라 생각하면 이곳을 더욱 여유롭고 운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거리를 양 쪽을 채우는 것은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레스토랑, 골동품 숍, 부티크, 갤러리들이다. 19세기 말까지 가난한 자들의 동네였던 곳에서 비록 돈은 없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 배우, 저널리스트들이 드나들면서 이토록 매력적인 베오그라드의 몽마르뜨로 변신했다. 빈티지스럽고 보헤미안적인 거리에 밤이 되면 낮과는 다르게 흥청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외 테라스엔 와인 잔이 오르고, 록 밴드의 음악이 연주되며, 마치 영화 같은 풍경은 밤늦게까지 멈출 줄을 모른다. 몽마르트르와도 비교되는 보헤미안 거리는 아름다운 꽃 장식과 화려한 색들로 장식해 놓은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예쁜 카페와 세르비아 전통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예술가의 거리답게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간판이 거리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우리 몽마르뜨에 가요.” 베오그라드에 해가지면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올드 타운에 있는 스카다리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거리 입구에서 곳곳을 가리키는 이정표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고, 자갈돌 길이다.

 

 

 

 

거리의 풍경

 

 

세르비아의 시인이자 화가이며, 극작가였던 Duro Jaksicdml 조각 상

- 사람들이 많이 만져 반들반들하다.

 

 

 

 

꽃으로 장식된 카페들

 

 

거리가 끝나는 곳의 모습

 

 

거리 주변의 안내도

 

 숙소가 이 거리옆에 있고 시내로 가기 위해서 이 거리를 통과해야 하기에 몇 번을 이 거리를 지나 다녔다.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시간이 바뀜에 따라 거리의 주인들도 바귀고 있었다. 사진은 낮에 찍은 것이지만 밤의 거리 모습이 더 좋았다.

 

 스카다리야 거리를 지나 베오그라드의 중심지로 진입하면, 매력적인 여인들과 밝고 화사한 쇼핑 거리가 이어지는 광장이 나온다. 공화국광장이다. 서구의 거대 도시를 연상시키는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의 마음도 너그러워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다. 사회주의 국가 도시를 생각했던 어두운 분위기는 차츰 수그러들고, 자유와 낭만적인 도시의 활기와 당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광장 주변에는 국립박물관, 국립극장, 기마상이 있는데, 기마상의 주안공은 1867년 오스만투르크로부터 세르비아를 해방시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3세이다.

 

 광장 주변은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나도 여기 카페에 잠시 앉아 주스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매혹적인 여인들을 보면서 한가함을 즐겼다.

 

 

 

 

공화국 광장 부근

 

 

 

 

 공화국 광장에 있는 미하일로의 동상 앞은 시민들이 사랑하는 만남의 장소다. 한 시간만 서있으면 베오그라드 사람 다 봤다고 거짓말해도 될 정도로 북적거렸다. 시내가 조그마하고, 볼거리 대부분이 적당한 거리에 있어 직접 걸으며 보는 도보여행이 딱 알맞은 곳이다. 말동상 뒤의 건물이 국립박물관인데 하필 수리 중이라 문을 열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이 날이 마침 무슨 선거 유세날이라 연단을 만든다고 북적거렸다.

 

 

국립극장

 

 바로 옆에 국립극장이 있었다. 극장에 들어가 공연 일정을 보니 오늘 오페라 '오델로'를 공연한다고 한다. 티켓가격이 상상이상으로 얼마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웬만한 오페라라면 적어도 십만원은 주어야 하는데 약 삼만원 정도에 좋은 좌석을 가질 수 있었다. 얼른 구입하고 저녁에 다시 국립극장 내부를 구경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발길을 돌려 간곳은 화려한 현대의 거리였다. 공화국 광장에서 칼레메그단요새까지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도로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 길 양쪽으로 갤러리, 서점, 쇼핑몰,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이 어느 도시의 번화가보다 못하지 않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가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도 아주 여유로운 거리였다. 단순히 쇼핑 구역이 아니고, 우아한 핑크빛 건물의 과학 예술 아카데미 등 1870년대 후반에 지어진 빌딩과 맨션들이 많아 국가에서 법으로 보호하는 베오그라드의 랜드마크다. 남동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꼽힌다고 하니길 위를  한가로이 다니면서 구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길을 걷다가 피곤하면 카페에 들어가서 차를 한잔 마시거나 출출하면 식사를 하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나도 거리를 걷다가 점심을 먹었다.

 

 

 

 

 

 

거리의 여러 모습

 

 

거리 중앙에 있는 방위표

 

 

아름답게 핀 화단의 꽃

 

거리를 제법 걸어가면 칼레메그단 요새가 나오는데, 요새에 도달하기 조금 전 왼쪽으로 가면 사보르나교회가 있다. 세르비아 최대의 정교회로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인데 느낌은 카톨릭 성당과 비슷하다. 내부에는 아치형의 천장과 성화로 이루어진 벽이 눈길을 끌고 외부의 모습도 아름답다.

 

 

사보르나 교회 전경

 

 

첨탑

 

 

 

내부의 화려한 모습

 

 

 

 

 

교회 외벽및 스테인드그라스의 모습

 

 

사보르나 교회 맞은 편에 카톨릭 성당 - 문을 잠가 놓았다.

 

 

 드디어 베오그라드의 자랑 칼레메그단 요새(Kalemegdan Fortress)에 다다랐다.

 

 만약 성급한 여행자가 베오그라드를 잠깐만 구경하고 떠날 예정이라면, 세르비아 사람들은 그 여행자에게 꼭 데려가는 장소가 바로 칼레메그단 요새다. 사바강()과 도나우강의 합류지점인 스타리그라드(Stari Grad)의 높이 125.5m 지대에 위치하는 암벽 위에 있는 칼레메그단은 1세기 로마가 지배했던 시절부터 요새나 성이 서 있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요새는 대 부분이 12세기로 예전에 파괴되어 버린 건물 위에 1740년대에 세워졌다. 성벽은 아직도 구 베오그라드 시의 경계선을 나타내고 있다.

 

 터키어로 '칼레''요새', '메그단''전장(戰場)'을 뜻한다오늘날 칼레메그단 요새는 오랫동안 침략을 받은 베오그라드의 역사와 나토의 폭격에도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채,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아 있다. 요새의 벽 모든 곳에 남아 있는 전투의 상처는 전쟁에 시달린 베오그라드의 과거를 보여준다.

 

 이곳은 현재 베오그라드의 주요 관광 명소이다. 이 도시의 복잡한 역사가 남긴 유물로는 로마 시대의 유적, 파샤의 무덤, 천문대, 여러 개의 박물관 등이 있다. 주변을 둘러싼 공원에는 조각품이 가득하며, 또 다른 훌륭한 기념물 하나는 제 1차 세계대전 동안 도와준 것을 감사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에게 헌정한 거대한 청동 조각상이다.

 

 

칼레메그단요새 설명판

 

 

 

프랑스에 헌정한 청동 조각상

 

 

 

 

 

 

 

 

 

 

요새의 여러 모습 - 요새라기보다 공원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완상하다가 눈에 띄이는 풍경이 다뉴브강과 사바강 두 강이 만나는 풍경이다. 양수리의 풍경괴 비슷하게 두 강이 합류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가 얼마나 아름답고, 그 강변을 바라보는 마음은 얼마나 여유로운지는 강을 낀 도시에서 살아 보아야 안다. 베오그라드 사람들에겐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그런 곳이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강이 칼레메그단 바로 앞에서 합류한다. 베오그라드를 감싸고 흐르는 두 강의 만남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칼레메그단의 오래된 성벽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면서 여유롭게 보는 것이다. 눈앞에 방해하는 자 하나 없는 순수한 풍광이 펼쳐진다. 베오그라드의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로 꼽히는 곳이다.베오그라드의 한가한 시민들은 이곳에 낚시대를 던져놓고 물고기를 낚기도 하는데, 그들이 물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는 모르겠다.

 

 

 

 

 

두 강이 흐르면서 합쳐지는 풍경

 

 한가로이 강을 구경하다가 아래로 내려 가면 승리자라고 하는 거대한 탑이 보인다.

 

 강을 바라보고서 벌거숭이 엉덩이를 드러낸 남자의 정체는 빅토르(승리자). 세르비아가 오스만 투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리자의 탑이다.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으로 처음에는 시내 중심지에 있는 모스크바 호텔 앞에 세울 예정이었으나 1928년에 시민들이 불쾌하다고 난리를 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도리아식 기둥 위 14미터 높이로 떠있어서 누드는 제대로 보이는 게 하나 없었는데...... 아무튼 오늘의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빅토르를 파리의 에펠탑과 비교할 정도로 자랑스러워 한다.

 

 

 

칼레메그단요새 구경을 마치고 다시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를 통과하여 숙소로 가서 저녁에 오페라를 보기 위해 휴식하기로 한다.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

 

저녁을 일찍 먹고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으로 가는 길이 보헤미안거리에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극장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관객도 엄청 많지는 않았으나 객석은 거의 다 찼다.

 

 

국립극장 무대

 

 

 

 

화려한 극장의 내부

 

 

 

 

공연이 끝난 뒤의 무대 인사

 

 

 2층에서 공연을 보는데 우연히 옆에 동양인들이 자리했다. 묘하게도 한국, 일본, 중국인이다. 왼쪽부터 필자, 한 사람 건너 중국의 젊은이, 그 다음이 일본인 회사원이었다. 중국의 젊은이는 휴가를 내고 일주일을 예정으로 베오그라드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일대를 다닐 예정이라고 했고, 일본인은 아마도 이 오페라를 후원한 기업의 종사자인 듯했다. 하여튼 묘하게 아시아 세 국가의 사람들이 함께 오페라를 보게 된 것도 기념이라며 모두들 기뻐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페라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잠을 청하여 자고 다음날 아침에 숙소 주변에 있는 시장에 가 보았다. 우리의 재래시장과 비슷한데 각종 채소와 과일, 꽃 그리고 여러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여기서 꿀을 조금 사고 구경을 하고 아침을 먹은 다음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시장의 여러 모습

 

 

 

 

 

 

시장 주변의 풍경

 

 베오그라드에서 길지는 않았지만 이틀을 보내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겠다.

다른 어떤 도시보다 여유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으면서, 적당한 번잡함과 옛스러움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고, 그들의 생활의 리듬이 아주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 도시는 한가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 다시 시간이 되면 이 도시로 올 것이다. 여행 중에 여유를 좀 가지고 한가로이 거닐면서 먹고, 마시고, 생각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베오그라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는지....

 

 시간이 여유가 좀 있어서 시장 주위를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빵을 좀 사서 준비를 하고 숙소로 가서 짐을 챙겨 떠났다.

 

 이제 우지체로 간다.